2020년 3월 11일의 글
어릴 적 가장 설레었던 날이라고 하면 어머니께서 한달에 한 번씩 책이 가득 담긴 박스를 가져오시는 날을 바로 이야기할 것이다. 초중등을 대상으로 독서논술을 가르치시는 어머니는 매달 수업교재를 받아오셨는데 그 새 책들의 향기를 맡고 먼저 펼쳐보는 영광은 선생님의 자식인 나에게로 돌아갔다. 얇고 그림 가득한 1학년 책부터 사회의 어두운 면모를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하는 책까지, 책 한 박스를 닥치는 대로 읽어내는 게 나의 재미였다. 이 책들은 도서관에서 혼자 골라 읽는 책보다 더 특별했는데 교재용으로 쓸만큼 그 자체로 좋은 책이기도 했지만 어머니와 함께 읽기 때문에 서로 읽기 전에 서론을 열어주고, 읽은 후 생각할 점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학교와 멀고 산과 가까이 또래 친구는 없는 곳에 위치한 평온하고 조용한 한옥집은 책읽기도 좋은 마당을 가졌었다.
입시를 생각하기 시작했던 때부터 지금까지 소설을 거의 읽지 않았는데 코로나 때문에 미쳐가는 나에게 어머니가 던져준 책이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였다. 간만에 추천받은 책이라 생소하기도 하고 옛날 기억도 나며 책장을 열었다.
아몬드는 '감정 표현 불능증( Alexithymia)'을 가지고 태어난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다. 감정 표현 불능증은 말 그대로 보통 사람들이 가지는 희노애락의 감정이나 방어기제,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지 못한다. 소년은 감정으로 우러나와 자연스레 하게 되는 사회성을 '상대방이 웃으면 같이 웃기'같은 일련의 규칙으로 배우며 학습한다. 그 후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곤이'라는 아이를 만나게 되는데 친구과 되어가는 과정에서 여러 사건이 일어나며 성장한다.
읽은 포인트
1. 나의 약함을 드러내는 감정
작중 감정의 늪에서 발버둥 치는 '곤이'는 큰 성장통을 앓는다. 자신에게 이상적인 아들의 모습을 원하는 아버지에게 반항하고, 자신의 눈에 거슬리는 아이를 괴롭히고, 자신을 옭아매는 사회의 규칙에 저항하고, 자신의 이미지를 보고 나쁜일을 했을거라 속단하는 주변에 화를 낸다. 어른들의 보호라는 사회의 덫에 갇혀 자유를 원하는 청소년들은 이러한 모습을 한 번쯤은 상상해봤을 것이다. 이런 친구들을 무서워하면서도 선망하고, '왜 저러지'하며 비웃으면서도 자신도 때려치고 싶다고 말하고 싶을테니까.
곤이는 자신이 감정에 휘둘리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약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주인공 윤재의 감정이 없고, 주변에 휘둘리지도 않으며 심지어 자신에게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에 끌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도 너처럼 감정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어" 감정이 없는 주인공 윤재를 부러워하기도 하며 강해지고 싶어한다. 곤이가 생각하는 강함은 사람들에게 상처받지 않고 자신을 건들지 못하게 공격할 수 있는, 가시 돋힌 고슴도치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곤이는 윤재와의 만남으로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받아들이고 성장함으로써 강함을 얻는다.
주변이 요구하는 것의 반대로 행동하는 반항과 자신이 원하는 것을 고철하는 태도는 전혀 다르다. 이 두가지가 섞여 나오는 것이 청소년기이고, 모든 것을 반항으로 생각하는 어른들의 시선은 아이들의 성장을 막는다. 나는 반항적인 아이들에게 애정이 간다. 아이들이 사회의 규칙에 순응하기 위해 자신의 태도를 접어들어가는 것이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내 생각과 태도를 곱씹을 줄 알고, 성숙하게 발전시키는 방법을 알려주는 그들의 편이 되고 싶다.
2. 공감, 그리고 사회
주인공은 공감능력이 결여되었지만 사회에 녹아들기위해 노력하고 공감을 '노력'한다. 그리고 결국 자신도 똑같은 아픔을 겪는 경험을 통해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눈물을 흘린다.
완전한 공감이란 없다. 주인공 윤재처럼 가장 비슷한 경험을 겪고 그것에 빗대어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 우리가 대부분 하는 공감의 형태이다. 그렇기에 공감은 자동적인 것이라기보다 '노력'과 더 가깝다.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하고 더 살펴보고 그들에 나의 작은 경험을 대보며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다. 많은 노력이 들고 힘들고 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는 공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까. 어릴 적에는 괴롭히고 날개를 뜯기도 했던 잠자리를 지금 보면 그들의 발버둥에 먼저 눈이 간다. 똑같은 고통을 느낄 수 있구나를 느끼며 그들의 삶에 고통을 주지 않고 보내준다. 복잡한 문제가 얽힌 사회에서는 이런 일차적 고통보다 더 많은 고통이 있다. 그 고통의 종류는 너무 많아서 모두가 이해하기에는 힘든가 보다. 코로나의 발생지인 중국의 입국 금지를 외치며 인종을 혐오하면서 우리나라의 입국을 금지한 베트남은 욕하며 불매운동을 벌리고, 후진국이었던 우리를 도와주었던 나라에 고마워하면서 지금의 후진국은 무시한다. 우리 사회는 공감하고 있을까? 어릴 적의 잠자리처럼 선을 긋고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무미건조한 눈으로 쳐다보고 그 울음이 왜 우는 것인지 알려고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3. 부적절감
개인적인 성향에 의한 것이라 마지막에 쓴다. 나는 어릴 적 유독 사람을 대하는 것이 힘들었다. 어떻게 인사할지도, 무슨 대화를 할지도, 어떻게 대답할지도 모르겠어서 낯선 사람들이 두렵고 힘들었다. 엄마 치마 속으로 피하고 울었다. 상황에 쉽게 녹아드는 친구들을 관찰하고 따라하는 것이 나의 사회성이었다. 주인공이 '사람들이 웃을 때 따라웃기', '고맙다는 말을 하면 천만에.하고 말하는 것' 등 하나하나 배우는 것들이 내가 스스로를 가르쳤던 일이었다. 어떤 표정이 어떤 감정을 말하는지, 내가 친해지려면 혹은 멀어지려면 어떻게 대해야하는지 많은 사람들을 보고 따라하며 나만의 방식으로 만들었다. 감정 불능은 아니지만 나는 적응하기 위해 이런 노력이 필요했던 사람이고 그래서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기도 했다.
아직도 내가 가장 어려워 하는 감정이 '부적절감'이다. 부적절감은 이 상황에 내가 적절하게 행동하는지 모르겠는 불안한 감정의 한 형태다. MBTI에서는 사회성 결여가 INTP인 성격의 고질적인 성격이라고 한다는 것을 보았지만 나는 이런 부적절감이 달갑지 않고 고치고 싶은 부분이다. 이제는 ENTJ로 나올 정도로 성격을 변화시키기도 했고 책과 여러 곳에서 배운 경험으로 낯선 상황에 잘 대처하지만 여전히 부적절감을 떠올릴 때가 많다. 여담이지만 대부분 부적절감을 주는 사람을 보면 피하는데 나는 오히려 부적절감을 없애기 위해 친해지려고 다가간 경우가 더 많다.
사회성을 얼마나 타고 났든, 사람을 읽고 대하는 법은 누구나 배워야하고 평생에 걸쳐 알아가야 한다. 이것에 대해 아무 생각 없이 단지 '운'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면 답답함이 올라온다.(내 노력이 선천적인 것이라고 평가받는 것처럼 기분나쁜 일도 없다) 어릴 적부터 이것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가이드해주는 어른이 많았다면 상처를 주고 받는 일이나 남을 배척하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적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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